유적발굴 및 조사연구


영동 지봉리 고분

▪︎유적위치 충청북도 영동군 황금면 지봉리
▪︎조사기간 1983. 11. 23. ~ 1983. 12. 20.
▪︎시대 원삼국시대~백제시대
▪︎유적개요
1986년도부터 1991년도까지 6년간에 걸쳐 연차적으로 진행된 진천지역 토기요지 조사에서는 모두 20기의 토기요지와 그에 부속된 유구들을 발굴하였다. 이 토기요지들에서 출토된 토기들은 한국 고고학상의 시대구분으로 원삼국시대와 백제시대에 해당되는 것으로 당시의 토기생산체제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대전 EXPO ’93을 맞이하여 본 박물관에서는 발굴된 토기 요지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 한 87년도 7호 요지를 실물크기로 재현 복원하였으며 아울러 출토된 유물을 시대별로 분류 전시하였다.

      


충북 진천군 산수리·삼용리 백제토기 가마터

▪︎유적위치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삼룡리 · 덕산면 산수리
▪︎조사기간 1987 ~ 1991
▪︎시대 원삼국시대~백제시대
▪︎유적개요
1986년도 중부고속도로 건설에 따른 문화유적 조사의 일환으로 시작된 진천 삼룡리ㆍ산수리 백제토기 가마터 발굴조사는 1987년도부터 1991년까지 5개년 계획으로 실시되었다. 이 5개년 동안 1991년을 제외한 1987년부터 1990년까지 토기요지 20기와 이 요지들과 관련있는 수혈주거지 6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이러한 토기 요지와 폐토기 퇴적장, 그리고 수혈주거지들에서는 수많은 토기편이 출토되었다. 이 토기요지들에서 출토된 토기들은 한국고고학상의 시대구분으로는 원삼국시대와 백제시대에 해당되는 토기들로써 태토와 소성상태에 따라 크게 경질무문토기와 타날문토기로 구분된다.

                     


충남 금산 장대리 고분군

▪︎유적위치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장대리 549-1번지
▪︎조사기간 1차(1989. 11. 14. ~ 1989. 12. 22.)
2차(1990. 12. 02. ~ 1991. 01. 17.)
▪︎시대 청동기시대·삼국시대
▪︎유적개요
금산 장대리유적에서 조사된 삼국시대 석곽분은 모두 28기이다. 이들은 철마산에서 평야쪽으로 뻗어 내린 지맥을 입지로 하였는데, 지맥의 능선부보다는 양지쪽인 지맥의 서남쪽 경사면을 주요 입지로 택하였다. 이 석곽분은 모두 횡구식석곽들로 출토된 유물들은 대부분 유개식ㆍ무개식의 고배, 대부장경호, 단경호, 대부직구호, 파배, 유개발형토기, 완 그리고 병형토기 등의 토기들이었다. 금산 장대리에서 조사된 28기의 고분은 고분의 형태와 출토유물로 보아 6세기 중엽경에 신라가 이 지역에 침투하여 조성된 유적으로 여겨진다. 이 밖에 금산 장대리 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유구와 유물도 일부 발견ㆍ조사되었다.

      


대전 탄방동 남선근린공원내 유적

▪︎유적위치 대전광역시 서구 탄방동 1984번지
▪︎조사기간 1993. 11. 22. ~ 12. 21.
▪︎시대 원삼국시대·고려시대
▪︎유적개요
이번 조사를 통해 대전 탄방동 남선근린공원 주변에는 다양한 시기와 성격의 유적이 분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특히 공원의 서쪽 경사면에는 원삼국시대 주거지와 고려시대 무덤이 밀집 분포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는데 주거지는 형태는 타원형이나 반타원형의 원삼국시대 주거지로 판단되며, 유물은 경질무문토기와 타날문토기편이 다수 수습되었다. 고려시대 무덤은 토광묘로 2기가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청동발과 청동 숟가락이 있다.

      


대전 구성동유적

▪︎유적위치 대전광역시 유성구 구성동 산 20-1, 22번지
▪︎조사기간 1994. 08. 18. ~ 1994. 12. 15.
▪︎시대 청동기시대·원삼국시대·백제시대·조선시대
▪︎유적개요
구성동 유적은 갑천변의 얕은 구릉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청동기시대, 원삼국시대, 백제시대, 조선시대로 이어지면서 다양한 성격의 유구가 구릉의 정상부와 경사면 일대에 밀집ㆍ조성되어 있었다. 청동기시대에는 소위 송국리형 주거지가 구릉 경사면 일대에 조성되면서 취락지가 이용되기 시작하였다. 원삼국시대에는 구릉의 남쪽 경사면 일대에 주거지들이 집중적으로 조성되면서 비교적 큰 취락지가 형성되었다. 원삼국시대 취락지가 폐기된 이후 4세기 중엽경부터 이 구릉의 동쪽 경사면에는 백제시대 토광묘와 옹관묘가 혼재된 고분군이 조성되었다. 조선시대의 유구는 수혈주거지 8기와 소형석곽묘 1기가 조사되었다. 구성동유적의 바로 서쪽에는 구성동 토성이 인접하여 있다. 이 유적의 원삼국시대 취락과 백제시대 토광묘군은 구성동 토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대전 법동 건물지

▪︎유적위치 대전광역시 대덕구 법동 67-7번지 일대
▪︎조사기간 1차(1995. 11. 29. ~ 1996. 02. 16.)
2차(1996. 05. 08. ~ 1996. 08. 28.)
3차(1996. 11. 11. ~ 1996. 12. 23.)
▪︎시대 고려시대
▪︎유적개요
법동 건물지에 대한 3차에 걸친 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구는 건물지 7기와 배수로 시설 1기, 우물 1기, 담장시설 2기, 원형 수혈유구 1기 등 모두 12기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출토된 유물들은 기와류와 자기류, 토기류를 중심으로 한 생활유물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일부 장신구와 동전 등이 출토되었다. 법동 일대가 고려시대 회덕현의 중심지 또는 이와 멀지 않은 곳에 해당되므로 이 일대에 이러한 대규모의 건물을 축조하고 생활하였던 주체는 당시 대전지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던 지방 세력이거나 관료층에 해당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 사용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건물지의 성격은 지방 유력자의 거처 또는 관청과 같이 공적 기능을 담당했던 건물 등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법동 건물지들의 존속시기는 출토된 기와류와 자기류 및 동전 등의 사용연대를 감안할 때 11세기~12세기대로 판단된다. 법동 건물지에 대한 조사를 통해 고려시대 대전지역의 생활상과 지역적 위상 등을 파악할 수 있는 많은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대전 오정동유적

▪︎유적위치 대전광역시 대덕구 오정동 산 55-6번지 일대
▪︎조사기간 1996. 03. 25. ~ 1996. 04. 27.
▪︎시대 원삼국시대·백제시대·조선시대
▪︎유적개요
대전 오정동 유적에서는 원삼국시대 수혈주거지와 백제시대 토광묘 그리고 조선시대 주거지, 건물지, 용도미상의 수혈유구가 조사되었다. 원삼국시대의 유구는 수혈주거지 5기가 조사되었는데 남쪽 주능선의 능선부를 따라 넓게 분포되어 있었고 유물은 경질무문토기, 타날문토기, 석기, 철기류 등이 소량 출토되었다. 백제시대의 유구는 토광묘 2기가 조사되었다. 1호 토광묘에서 난형호 1점, 단경호 2점, 완 1점, 개배 1점이, 2호 토광묘에서는 단경호 1점, 소형 장경호 1점, 소형 단경호 1점, 완 1점 등의 토기류와 철도자와 철촉편이 각 1점씩 출토되었다. 조선시대의 유구로는 수혈주거지 7기, 건물지 3기, 용도미상의 수혈유구 2기가 조사되었다.

         


대전 노은택지개발지구 문화유적

▪︎유적위치 대전광역시 유성구 노은동
▪︎조사기간 1997. 10. ~ 1998. 04.
▪︎시대 청동기시대·원삼국시대·조선시대
▪︎유적개요
충남대학교 박물관 주관 아래 한남대학교 중앙박물관과 고려대학교 매장문화연구소가 공동으로 참여하여 실시되었다. 본교 박물관은 B지역 남쪽구역을 맡아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5기, 원삼국시대 주거지 7기, 조선시대 주거지 8기 · 무덤 4기, 성격을 밝히기 어려운 원형수혈 18기가 조사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평면형태가 세장방형이고 주거지내부에 방형의 노지가 확인되었다. 원삼국시대 주거지는 대부분 파괴되어 그 원형은 알 수 없었으며 경질무문토기편과 타날문토기편들이 출토되었다. 조선시대 주거지는 말각방형 7기와 원형 1기로 나누어 지는데 벽면에 아궁이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유물은 분청사기편, 백자편, 기와편 등이 출토되었다.

         


대전 노은동 유적

▪︎유적위치 대전광역시 유성구 노은동
▪︎조사기간 1차(1998. 06. 18. ~ 1998. 11. 14.)
2차(1999. 01. 14. ~ 1999. 02. 03.)
▪︎시대 구석기시대·청동기시대·통일신라시대·고려시대·고려시대 이후
▪︎유적개요
노은동 유적은 대전월드컵경기장 건설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로 확인된 유적이다. 이 지역에서는 다양한 성격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구석기시대의 석기는 AㆍB지역 모두 수습되었는데 유물의 수는 407점에 달한다. 신석기시대 유구는 A-2지구의 1호 움구덩 1기뿐이며, 출토된 유물은 빗살무늬토기로 모두 5개체이다. 청동기시대는 집자리 4기, 움무덤 1기, 움구덩 13기가 확인되었다. 삼국시대에 해당하는 유구는 움무덤(4기)을 비롯하여 도랑무덤(2기), 독무덤(1기), 움구덩(1기), 집자리(1기), 숯가마터(4기)가 조사되었다. 통일산라시대의 돌덧널무덤은 4기가 조사되었는데 대부분 파괴되어 바닥과 벽석 일부만 남아 있었다. 고려시대 이후에 해당하는 유구로 집자리(15기), 움무덤(102기), 돌덧널무덤(27기), 움구덩(13기), 회곽무덤(3기), 독무덤, 불땐자리, 주검구덩이 있다.

                        


충남 공주시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건설구간내 문화유적

▪︎유적위치 충남 공주시 우성면 상서리·정안면 내촌리, 전평리
▪︎조사기간 1999. 03. ~ 1999. 12.
▪︎시대 구석기시대~조선시대
▪︎유적개요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건설구간내의 2지구ㆍ3지구 A지역, 3지구 B지역ㆍ6지구ㆍ11지구에 대한 발굴조사이다. 이 발굴조사 대상지역중 가장 큰 성과는 2지구와 11지구 조사라고 할 수 있다. 2지구에서는 많은 수의 원삼국시대 주거지들이 조사되었는데 주거지 내부에 부뚜막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이 주거지들은 백제이전 마한인들의 생활상을 복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로 중서부지방의 취락고고학의 연구분야에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11지구에서는 주구토광묘가 조사되었는데 인근의 장원리유적, 공주 하봉리유적, 천안 청당동유적, 천안 신풍리유적, 서천 오석리유적 등과 함께 이 지역 원삼국시대 무덤 연구자료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각 지구에서 확인된 구석기시대 뗀석기와 쐐기층은 공주 정안천변을 중심으로 한 제4기 퇴적층에 구석기시대 유적이 다수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대전 용호동 구석기유적

▪︎유적위치 대전광역시 용호동 산 27-1번지·전 41-2번지
▪︎조사기간 1차(1999. 09. 01. ~ 1999. 11. 09.)
2차(2000. 03. 20. ~ 2000. 06. 27.)
3차(2001. 04. 24. ~ 2001. 06. 24.)
▪︎시대 구석기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유적개요
용호동 유적의 발굴조사는 세차례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하여 약 10만년전에서 1만년전 사이에 속하는 것으로 보이는 4개의 구석기시대 문화층이 조사되었다. 4문화층의 석기는 주로 석영이나 규질암으로 이루어진 특징을 지닌다. 반면에 3문화층으로 가면서 혼펠스와 같은 새로운 암질이 등장한다. 3문화층에서는 갈린 자국이 뚜렷한 석기가 발굴되었으며, 2문화층에서는 슴베찌르개 1점이 출토되었다. 1문화층에서는 불땐자리와 석기제작터가 확인되었다. 용호동유적에서 발굴된 석기는 모두 2500여점에 이르며, 좁은 발굴범위에 비하여 출토유물의 빈도수는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구석기시대 이외에 1차 발굴작업시 1지구에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무덤 등이 조사되었다.

                  


옥천 대천리 신석기유적

▪︎유적위치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대천리 산 329번지
▪︎조사기간 2000. 8. 23. ~ 2000. 10. 23.
▪︎시대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근대
▪︎유적개요
대천리 유적은 옥천 마성산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뻗어내린 산줄기의 끝자락에 위치하며 신석기 집자리 1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의 평면형태는 직사각형이며, 집자리의 크기는 잔존 동서길이 950㎝, 남북 너비 510㎝, 최대깊이 35㎝이다.(면적 약 48.5㎡, 약 14.7평) 집자리 바닥에서 일정한 간격을 둔 2개의 기둥구멍이 발견되었다. 이들 기둥구멍은 북벽과 30~40㎝정도 떨어져 집자리 안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유물은 모두 집자리 안에서만 출토되었는데 토기와 석기로 나누어 진다.토기는 무늬가 새겨진 것과 없는 것이 모두 출토되었으며 능형집선문 계통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석기에는 갈판과 갈돌, 뒤지개, 돌도끼, 숫돌 등이 있다. 발굴 중 집자리 바닥에 남아 있는 채층을 채취하여 분석한 결과 여러 종류의 탄화 곡물이 확인되었다. 지금까지 탄화된 쌀ㆍ보리ㆍ밀ㆍ조ㆍ기장 등이 발견되었다. 이밖에 벼껍질, 삼씨, 도토리, 꽃받침, 벌집 등도 나왔다. 이러한 탄화곡물등의 존재는 적극적인 농경의 흔적으로 파악될 수 있으며 아울러 앞으로 금강유역을 중심으로 한 신석기시대 문화를 살피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대전 신대동유적

▪︎유적위치 대전광역시 대덕구 신대동 전 459-4 일대, 신대동 산 19-11 일대
▪︎조사기간 2001. 03. 06. ~ 2001. 04. 14
▪︎시대 원삼국시대, 고려시대
▪︎유적개요
신대동 유적은 갑천의 충적대지에 형성된 유적으로 발굴조사 대상지역은 2지점과 3지점으로 나누어진다. 원삼국시대 주거지는 신대동 2지점에서만 조사되었는데 대부분 잔존상태가 좋지 않아 정확한 구조 및 유적의 형성과정을 파악하기 어렵다. 신대동 주거지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토기편으로 이들은 크게 경질무문토기와 타날문토기로 나누어진다. 무덤 유적은 신대동 2지점에서 석곽묘 2기, 토광묘 4기가, 신대동 3지점에서 토광묘 1기, 옹관묘 1기가 조사되었다. 신대동 2지점에서 조사된 석곽묘는 고려시대 석곽묘로 추정되며, 토광묘 4기는 출토된 유물이 없어 그 축조시기를 알 수 없었다.